ARTICLE/ALBUM ANALYSIS

행복한 부조리함; 윤지영 - <시지프 신화>

livininnyquil 님의 블로그 2026. 3. 11. 11:55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시지프는 여러 신들,
특히 제우스를 기만한 죄로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 무거운 바위는 정상에 올리면
다시 반대쪽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올려야 하는
영원한 형벌이자 의미없는 행위가 된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의 형벌을보고
이를 인간의 인생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란 얼마나
부조리하고 비관적인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부조리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비참해질 수 있는 일이니
우리들은 그런 비관적인 삶을 뒤로 한 채
자살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에 대해서
그의 소설 <시지프 신화>에서 서술한다.
 

알베르 카뮈 -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물을 마시는 등의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당연한 행위들을 형벌에 비유한다.
이러한 형벌들은 죽기 전까지 끝이 없을 뿐더러,
나름의 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는 삶은 그 자체로 살아갈 의미가 있는지,
만약 없다면 자살하는 것이 옳은지
질문을 하고 본인 스스로 답을 내린다.
책의 마지막 문장에는

산 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라고 결론을 짓는다.
인생은 결국 그 자체로 의미없는 행동의
끝없는 반복이자 부조리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 받아들이고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끝없는 투쟁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처럼.
 


 
윤지영은 본래
희망적인, 넓게 보면 긍정적인 노래를 불러왔다.
 

우우우린
우린 너무 닮아서 서로 다른 그 작은 점을 사랑해

비슷한 우리,
내가 조금은 모자른 만큼 
그만큼 모나 있는 너
그 조금의 다른 점을 관찰하는 우리
 

토모토모
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어
널 옆에 두고 난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 너도 울음을 그치고
내 눈을 보고 이젠 다 됐다 하겠지

그저 너의 옆에 있어주면
너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겠지


윤지영 - <나의 정원에서>

 
윤지영은 정규앨범 <나의 정원에서>에서
어렵고 험난한 여러 과정 속
결국에는 찾게 될 정답을 위한
작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미숙함을 벗어나겠다는 마음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았다
비록 지금의 희망은
앞서 느꼈던 자유보다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우리가 헤매지 않게 
만들어 줄 것은
그 '작은 희망'임을 알아주길

 

어제는 당신 꿈을 꿨어요

 

You Have To Trust Me!

 
나는 어젯밤 꿈에 나온
당신에게 나아가기 위해
당신을 닮은 밤 하늘 별을 보면서
한걸음 다가가는 중이다.
부디 이런 나를 믿어주기를
 

나의 정원에서

 

나의 그늘

 
마침내 만나게 된 당신은 웃지 않고
난 당신의 눈물로 일궈낸 나의 정원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이제 헤매이지 않아도 되는 당신을
 
 
윤지영이 느꼈던 길에는
미성숙함과 장애물들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희생 또한 있었지만
부조리함따위 없었고
그녀가 받아들이는 '작은 희망'
만으로 견디고 당신에게 나아가려 한다.
 


 
다시 시지프 신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윤지영은 <나의 정원에서> 이후
그녀의 길 위의 예상 못한
여러 부조리함을 마주하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거대한 부조리함을 마주하게 된다.
 

윤지영 - <시지프 신화>

 
항상 정답을 기대하며 쉽게 답이 안나올때는
단지 이 과정이 어려울 뿐이고 
그 끝에는 분명 정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정원으로 가는 작은 희망을 노래한 윤지영은
혼란에 빠지며 '정답은 없다'라는 
잠정적 결론을 인정하려 한다.
완벽하게 성숙한 존재가 될 수 없고 
명확한 삶의 태도는 없다는 것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부조리함'을 의식하게 된다.
 
1. 1 Chance

1 Chance
the letter that you begged 
God you didn't wanna die

 
죽기 싫은 나의 마음을 다시 찾고
모든 나의 거짓들을 용서하여
다시 버틸 수 있기를
 
이 곡에서는 1인칭 시점이 아닌
타자의 관점에서 질문을 하는 듯한
형식의 가사를 이용했다.
부조리함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주관성과
본인의 감정을 배제하려는 자세로 보인다.
 
2. Hollow Face

Hollow Face
anxiety that I've been trying to down
broke through inept firewall

내려 놓으려던 불안감은
이내 두꺼운 장벽을 뚫게 되고
깊은 내면에 억눌러 있던 감정들은
외면에 공허를 불러 일으킨다.
 
3. 차원론

차원론
너는 내가 알던 네가 아냐
말하는 너의 눈엔 내가 있지도 않았지만


우리의 눈은 사물의 2차원을 보고
우리의 뇌가 그것을 3차원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2차원을 보듯이 너는 나의 한쪽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너가 지금 보고 있는 나는 실제적인 '나'가 아닌
경험적인 '나'가 아닐까.
 

깊고 검은 너의 눈동자에 
하얀 얼룩이 되고 싶지 않아

너에게 더러운 얼룩이 되기 싫었는데
결국 그렇게 정의가 되어지고.
 
4. 네가 미루는 것들

네가 미루는 것들
네가 미루는 많은 것들 속에
왜 날 향한 미움은 없는지
나는 모두를 믿지 못하면서
대체 왜 너는 아낄까?

너는 날 미워하는 것을 미루지 않고
나는 널 아끼는 것을 미루지 않고
 
 
앨범을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임팩트가 없고
잔잔한 로파이 질감의 사운드가 가득하다.
피아노, 트럼펫 등의 악기 뒤에 밀린
윤지영의 힘없는 목소리는
앨범의 주제인 피할 수 없는 부조리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잘 나타낸다.
그녀의 공연에 가보면
윤지영은 지친 듯
탁자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거나
바닥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우리라는 존재에 대해서
뛰어나게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미약함과
미성숙함에 지쳐 있었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편한 것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인정하는 것이 아닌 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피하려는 우리들의 움직임들은
미성숙과 성숙 사이
부조리함을 마주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함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누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가 되어서
끝을 모르는 부조리함을 견뎌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 written by mbao